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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GGRAPH ASIA 2010   Community Artworks of Animation
 
남북한 공동 프로젝트 3D 애니메이션 <딩가> 제작기 #4
KoreaGraph 2010-12-12

“야~ 이거…,  동영상을 남측으로 가져가도 됩니까?”
“이거 인터넷에 올리면 엄청 반응이 있을 것 같은데……”
“……”
공식적으로 남측에 공개된 적이 없는 것이라서 그런지 우리와 다르게 공개하는 것을 꺼려했다. 우리 같으면 데모를 여기저기 뿌리는 것이 자랑스러울 텐데 선뜻 공개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는 삼천리에서 작업한 작품들을 보면서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과 불안한 생각이 아직도 교차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딩가’는 그리 대단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effect 가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캐릭터의 모션이 중요하고 lighting 과 mapping 을 ‘딩가’의 이미지에 맞게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한 상황에서 정작 우리는 삼천리가 해온 캐릭터 모션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작업실을 둘러보았다.
작업 환경은 우리와 그리 다를 것은 없었다. 당시 1G hz 의 컴퓨터에 16~17인치 모니터 쾌적한 공간에 시원한 에어컨시설
“우리보다 더 좋은 환경인데요~ 헤헤헤”
라고 얘기하며 나를 째려보는 우리회사 이상익씨의 말이다.
사실 강남의 건물관리상의 문제로 우리회사엔 에어컨을 달지 못해서 모든 직원들이 찜통 속에 작업하고 있는 것이 페이스의 상황이었다.
순간 회사의 대표인 나로서는 평양까지 와서도 환경이 여기가 더 좋다는 우리회사직원의 농담 아닌 진실이 미안한 생각을 내심 더 강하게 만들었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우리나라의 CG 상황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지 않는가?
북한과 제작을 공동으로 한답시고 오기는 했지만 서도 우리도 그들에게 선뜻 이런 것들을 해서 이런 성과를 가져왔고 그래서 우리는 그들보다 한 수위다!  라는 식의 말을 꺼낼 것이 없다는 사실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항상 서울에 있을 때도 앞으로의 CG계의 가능성만을 얘기했지 큰 결과를 세운 것도 없지 않는가?, 그래서 ‘큐빅스’ 같이 해외에서 성과를 내는 project 에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도 모른다.
작업실에서 우리랑은 크게 다른 것이 있다면 어느 방에나 걸려 있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장군의 사진과 아직도 검은 치마 흰 저고리를 입고 있는 여직원(여성 연구사)의 의상일 것이다.
우리 같으면 벽에 이것저것 포스터도 붙이고 할 터인데 말이다.
우리는 다시 회의실로 내려와서 우리는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다.
여기서 우리는 조금은 황당한 얘기를 듣게 된다.
그것은 이미 스케줄을 북측에서 모두 새워 놓았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북한관광에는 그리 관심이 없고, ‘딩가’를 설명하고 짧게 일정을 잡은 CG에 대한 교육일정을 빨리 완수하고 빠르면 1주정도 후에 바로 서울로 돌아가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천리측은 개선문, 소년궁전, 주체탑, 서해갑문 등을 관람하게끔 이미 계획을 모두 세워 놓았다는 것이다.
사실 하나로측과 한교수님이야 이왕 온 거 볼거리를 많이 보고 가고 싶으셨겠지만 나와 우리 이상익씨는 1주일이 아니라 2주 동안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내심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러한 일방적인 발언은 앞으로의 일에 대한 불안감을 더하기에 충분했다.
다음 계약상의 문제에 대한 여러 안건을 놓고 합의사항에 대한 협의를 하였다.
일단 나로서는 북에서 해온 방식을 바꾸지 말고 다만 모션이나 이미지를 ‘딩가’에 맞추는 작업에 협조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제작 결과물을 북한에서 사용하는 Pal 방식대로 제작하기로 하고 검수 과정에 대한 방식에 대해서 얘길 나누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나는 서울에서 겪는 관점상의 문제를 평양에서도 얘기하게 되었다.
Character Animation를 기술적인 면에서 이해하고 있는 사람과 감성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과의 대화라고나 할까?
자꾸 기술상의 문제를 들에 대한 담보(확신)를 제시하고 그것에 대한 합의를 한 후에 제작에 들어 가야 한다는 얘기와 반드시 생겨날 Retake를 어떤 방식으로 검수하고 수정할 것인가에 대한 나의 얘기가 자꾸 꼬이는 것이었다.
북에 의견대로 기술에 대한 담보를 모두 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retake 는 걸릴 것이라는 나의 의견에 상당히 처음에는 당황해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나의 발언에 대해서 내가 받아내고 싶은 대답은 감독의 의도대로 나올 수 있도록 모션에 대한 교육이나 수정을 어떠 어떠한 방식으로 수정을 하겠다는 대답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기술에 대한 담보와 함께 충분한 자료를 받는 다면 Retake가 걸리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인지 감성적인 작업이기 때문에 초기에는 무조건 많은 Retake 가 생길 것이라는 나의 의견에 삼천리측 관계자들은 내심 불편한 심정을 내비쳤다.
급기야 최종 수정을 페이스에서 하면 어떻겠냐는 의견까지 나오고, 하나로 측에서도 웬만하면 Retake 안 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한심한 얘기까지 나왔다.
결국 우리는 평양에 있는 동안 이러한 문제에 합의를 보기로 하고 일단 짜여진 일정에 들어가기로 하였다.
나는 갑자기 남대북이 아닌 혼자서 여럿을 상대로 제작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하는 깝깝한 상황에 봉착하게 되었다.
물론 ‘딩가’가 역대 최고의 수작이라던가 최상의 quality를 고수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적어도 페이스에서 제작해온 quality를 조금이라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랬기 때문에 상당히 심각한 걱정을 하게 되었다.
만약 페이스가 만든 ‘딩가’와 삼천리가 만든 ‘딩가’가 상당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 이것은 정말 하느니만 못할 것이란 생각이 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또한 이것은 감독의 이름을 걸고 만드는 기획작품이 아닌가?
과연 관객은 남한 ‘딩가’와 북한 ‘딩가’가 많은 차이를 보일 때 어떻게 받아 들일 것인가?
별로 염두 해 보고 싶지 않는 생각이다. 분명 감독의 연출에 실망감을 표시할 것이 뻔하지 않은가?, 이렇듯 나는 ‘딩가’ project 의 최악의 상황에 대해서 걱정을 하기 시작하였다.
저녁에는 북에만 있다는 털게 찜(진짜 털이 난 게)을 먹고 술을 마셨다. 사실 나는 술을 잘 못하기 때문에 술자리는 항상 부담스럽다. 근데 북한 사람들은 정말 술 잘 마신다. 항상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신다. 나는 계속 권하는 술을 뿌리치기가 힘들었다. 저녁을 먹고 밤에 식당에서 나오니 밤하늘에 별이 많이 보였다.
‘역시 공기가 좋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숙소까지 걸어갑시다!” 하나로 이상열 과장의 의견대로 약 200메타 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가기로 하였다. 근데 정말 어두웠다. 전기 상황이 안 좋아서인지 가로등도 전혀 없고 건물에 불이 들어와 있는 것도 별로 안보였다. 밤길을 걸어 다니는 사람들도 손전등을 들고 다니다가 누군가가 다가오면 몇 번 반짝이면서 지나간다는 신호를 보내는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 어두운 길을 걷기도 정말 처음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빛으로 평양 길을 걷다 보니 어느덧 숙소에 닿았다.
숙소에 돌아와서도 걱정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결론은 하나 밖에 없었다. ‘모든 작품의 책임은 감독이 진다!’ 라는 원칙이었다.

“처음으로 해외 여행을 온 곳이 북한 이라니~!”
우리 이상익씨의 말이다. 한참 심각하게 고민을 하다가 그의 말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한참을 웃었다.

어두운 밤 평양 도시를 보고 있자면 가끔 지나가는 차들의 불빛이 유난히 낯설게 느껴진다. 그리 멀지 않는 서울의 네온 빛이 가득한 밤거리를 이 곳에 있는 사람들이 본다면 뭐라고 얘기할까? 궁금해졌다.
사실 딩가는 이미 상당부분 만들어져 있는 상황이었고 이미 자료를 먼저 삼천리 측으로 보낸 상황이었다.
그래서 딩가의 게으른 고양이 컨셉이라든지 캐릭터의 이해를 이미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남측에서 올라온 배 나오고 수염 기른 감독이 설명하는 딩가에 대한 설명이 재미있었나 보다. 설명하는 동안 내내 손으로 입을 가리고 ‘크크크’ 웃음을 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크게는 웃지 않더라도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사람도 보였다.
사실 어떤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첫 만남에서부터 활짝 웃으며 만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애니메이션을 북한하고 같이 제작하게 되었기 때문에 첫만남이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지기 북한에서도 많은 애니메이션이 제작 되어왔다. 그 중의 대표작이 “영리한 너구리” 라고 한다. 대부분의 내용이 계몽적이거나 권선징악의 기본적인 소재로 착하게 살면 복 받고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 라는 식의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미보다는 교훈적인 내용에 비중이 더 많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재미가 우선이고 교훈적인 내용 같은 것은 있으면 좋은, 없더라도 재미있으면 그만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딩가가 과연 북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 하는 것이 궁구했었다. 그러나 의외로 재미있게 보는 것 같았다.
역시 사람의 감성이란 사회가 다르더라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북한의 도시나 건물 안을 보면 정말 우리와는 다른 환경 속에서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간판과 화려한 네온 빛이 가득한 서울의 모습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곳은 한 곳도 없는듯하다. 반대로 얘기하면 이곳 평양과 비슷한 곳은 아마 서울엔 아무 곳도 없을 것이다.
커다란 김일성 동상과 붉은 색으로 크게 써 놓은 여러 가지 구호들이 시선을 끈다.
‘자력갱생’,’당이 결정하면 우리는 한다’,’조선을 위하여 배우자!’ 들의 구호들이 도시 한 복판에 붉은 글씨로 커다란 서울의 간판대신 쓰여져 있다.
도시에 있는 주민들의 의상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다들 겉보기에도 비슷비슷한 의상들을 입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은 것은 도시 곳곳에 걸려 있는 포스터 그림들인데, 한결같이 강인한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번 평양방문에선 많은 곳을 방문하도록 계획이 이미 삼천리 측에서 세워져 있었다.
우린 그냥 그 순서에 맞게 같이 다니면 되도록 되어 있었다.
사실 나는 이곳 저곳 방문하고 구경하는 것이 못마땅한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딩가’를 생각하면 이렇게 힘들게 온 평양에서 편하게 놀러 다니는 것이 불편하기만 했다. 빨리 기술적인 확인과 전수 그리고 제작에 들어갈 준비를 완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혼자서 남아서 교육이나 작업을 하겠다고 얘기해본들 꼭 다같이 다녀야 한다고 못을 박는 말에 그냥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상익씨와 나는 1주일 동안 모두 ‘딩가’에 대한 자료를 전수 할 수 있도록 계획을 새워 왔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중간에 다른 곳을 관광한다면 스케줄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2주 정도 머물러야 하는 부담이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2주를 머무르기로 하고 하나로통신 식구와 한교수님은 1주 후에 서울로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일단 2주를 머무르기로 했으니 이곳 저곳 들리는 것에 부담 없이 같이 다녔다.
-1주일 단위로 있어야 하는 이유는 북경으로 가는 비행기 편이 화요일과 토요일 2회 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구경한 곳을 나열하자면 ‘개선문’,’주체탑’,’소년궁전’,’옥류관’,’서해갑문’ 등이다.
하지만 이곳들을 설명하자면 이야기가 길어지니 www.unikorea.go.kr 에서 참고 하시길 바란다.
하지만 평양의 이곳 저곳을 다녀본 소감을 요약해 본다면.
우선 공기가 좋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서울 저녁하늘 많은 별을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평양은 공기가 맑아서 인지 저녁 하늘 초롱초롱 떠 있는 별을 볼 수 있었다.
개선문이나 주체탑 같은 경우는 김일성 수령을 찬양하고 숭배하는 북한 사람들의 상징적인 건축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모두 크고 장대하게 만들어 졌다.
한가지 특이한 곳 중에 한곳이 소년궁전이었는데, 쪼만한 7살짜리 아이들이 대부분인 거 같은데 노래, 연주, 그림 같은 것을 귀신처럼 해내는 아이들을 모아 놓은 곳이다.
사실 관광객들은 아이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좋아하고 박수치고 했지만 난 속으로 남한이나 북한이나 주입식 교육은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어려서 교과서 달달 외우는 교육에 얼마나 치를 떨고, 공부하기 싫어했는지 모른다.
삼천리의 안내원 중에서 김선생이라는 분은 남측에서 벌어지는 IT 분야에 상당히 관심이 많은 분이었다. ADSL 이나 무선 이동통신 같은 분야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역시 보수적인 사회인지 우리 이상익씨의 염색한 노랑머리가 계속 김선생의 기분을 언짢게 만드는 것 같았다.
말을 하다가도 이상익씨의 머리만 보면
“허~ 그 이선생 남자머리가 그~ 쯧쯔~” 하는 식이다.
“다음부터 평양에 들어 올려면 그 머리부터 자르고 들어와야겠습네다”
하지만 우리 이상익씨는 신기하게도 기가 죽지 않고 말대꾸를 했다.
“왜요? 한번 해보세요 기분 좋아요~”
“서울에서는 이 정도는 한 것도 아니에요, 머리 전체를 노랗게 하는 사람도 있는데~ 헤헤헤”
이상익씨의 말을 듣던 김선생과 이선생 안내원 두 분은 이상익씨의 머리를 다시 유심히 보다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설래 설래 고개를 흔든다.
“그~ 한감독 선생 머리 긴 것은 뭐~ 좀 이해가 감내다만 머리 노란 것 이해가 안 감내다. 하지만 한감독 선생도 머리만 깎으면 더 미남인데~”
이상익씨의 발언에 불똥이 내게로 튀었다.
“허허허”
나는 그냥 웃고 넘겼다.
사실 평양에서 우리 두 사람이 눈에 튀는 것은 사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를 외국인으로 보는 것이 사실이었다.
1주간의 일이 모두 끝나고 먼저 하나로 통신분 들과 한교수님은 먼저 토요일 비행기로 서울로 떠났다. 사실 상익씨와 내가 다른 분들을 서울로 보내고 일주일을 더 평양에서 보내게 됐을 때는 답답한 마음이 앞서 있었다. 그간 하지 못한 일들을 해야 하는 것과, 서울과는 벌써 1주일 동안 전화 통화 한번 못하고 지냈으니 답답한 마음은 당연한 것일 것이다.
그렇다고 편지를 보낼 수도 없고. 사실 북한에는 아직까지도 internet 이 되는 곳이 없다. -4곳에서 internet 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확인할 방도가 없다- 전화도 북경까지 밖에 안되고, FAX 도 북경 사무소를 거쳐서 승인을 받아서 해야 하며, TV 도 남측 방송은 나올 리가 없다. 다행이 호텔에 TV 에서 NHK 방송과 중국 방송이 나와서 가끔 한국에 대한 뉴스가 나올 때 조금씩 그림으로 한국의 뉴스를 접할 수는 있었지만 뭐라고 하는지 통 알 수가 없어서 몇 번 보려고 하다가 관두고 말았다.
삼천리 측에게는 그간 오전과 오후 시간을 몇 번식 시간을 내서 CG 이론 교육을 실시 하였다.
Modeling, Motion Control, Material Editing, Rendering 같은 이론적인 내용을 내가 설명하고 딩가를 작업해 왔던 방식을 이상익씨가 실무적인 부분을 교육하였다.
삼천리에서 사용하는 컴퓨터의 사양은 당시 ‘페이스’ 의 장비들보다 더 우수한 기종들이었다.
단지 전기 상황이 좋아 않아서 작업도중에 정전이 되면서 UPS (unlimited power system) 들의 ‘삐~’ ‘삐~’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서 마치 새들이 합창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이미 삼천리에선 Softimage, Maya, max, light wave에 대한 기능들은 한번씩 검토를 해본 것 같았다.
공대출신의 연구사(작업자)와 예술 대 출신의 연구사(작업자) 들이 같이 있는 구조이어서 그런지 툴에 대한 이해는 빨라 보였다.
재미있는 것은 조금씩 우리사 사용하는 용어가 좀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작업을 끝낸다 / 작업을 떨군다
밤 새운다 / 밤 팬다
열심히 한다 / 전투한다
cd-rom 굽니다. / cd-rom 쓴다
깨진다 / 튕겨나간다
괜찮다, 할 수 있다 / 일 없다
현상이 나타난다 / 표상이 나타난다
맥스 / 맥슈, 막스
광파 / 광파
컴퓨터 / 계산기
팀장 / 조장
작업자 / 연구사
프리뷰 / 미리 보기
하지만 설명을 한 뒤에 질문을 받아보면 아무런 질문이 없었기 때문에 잘~ 알아들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기본적인 동작단계 과제를 내주고 결과를 지켜 보기로 하였다.
동작단계 과제란 ‘페이스’ 가 신입사원에게 모션 트레이닝을 하기 위해 내주는 과제인데 이를 삼천리 연구사 들에게 과제로 내 준 것이다.
걷기부터 시작하여 기기, 장애물 넘기, 다리걸기, 몸으로 웃기 등의 4단계로 짜여 있는 과제이다.
하나로식구와 한교수님이 평양을 떠나는 날 우리는 삼천리 부사장님으로부터 할 얘기가 있으시단 소리를 들었다.
“묘향산에 다녀오시는 것이 어드렇습네까?”
“예? 아직 할 일들이 많이 있는데요?”
“먼 곳까지 오셨는데 묘향산에 못 가보면 안되지요”
“꼭 가야 합니까?”
“선생님들 묘향산에 가시면 좋습니다, 이미 계획을 다 잡아놓아서 뒤집을 수가 없습네다”
우리는 두 사람은 3일 동안 묘향산에 머무르게 되었다.

묘향산은 마치 설악산을 축소해 놓은 것 같은 산이다. 아주 가파르고 아기자기한 산이다.
이곳에 묘향산 호텔이 있는데 이곳에서 우리는 2박3일 동안 머무르게 되었다.
북한 사람들이 묘향선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바로 묘향산 호텔의 여자 안내원들이다. 요즘에는 산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사람들이 거의 없지만 북한에서는 흐르는 개울물 옆에 자리를 잡고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이 아주 별식인 것 같았다. 이렇게 개울가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때는 묘향산 선녀들이 와서 서빙도 하고 같이 술도 마시고 하는데. 정말 술 잘 먹고 넉살도 좋았다.
아침에 등산을 하자고 해서 같이 올라갔다가 무거운 몸에 지쳐서 다리에 알이 배기고 끝까지 다 오르지도 못하고 내려오니 이미 개울가 옆에 선녀가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 점심때부터 술판이 벌어졌는데. 북한 사람들은 정말 술을 자알 마신다. 나는 소주 3잔 마시고 몸이 무거워 그냥 바위 위에 누워서 퍼져서 잠시 잠이 들었는데. 우리 이상익씨는 선녀와 술 대결이라도 한 듯이 엄청 술을 먹었나 보다. 잠이 깨서 쳐다보니 우리 이상익씨가 술이 완전히 취해서 개울물에서 개헤엄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미끌미끌한 바위 때문에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비틀거리고 있었다.
‘오 마이 갓, 유 노우미~ 아 갓으로 고~’ 하는 식으로 계속 말도 안 되는 영어로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보다 못한 북한 안내원들이 이상익씨를 향해서 소리를 쳤다!
‘조선말을 하라구~ 조선말을~’ 여기서부터 내심 조마조마한 심정에 나는 걱정이 됐다.
혹시라도 술김에 말 실수라도 하면 큰일 아닌가!
‘김정일 ~ 어쩌구 저쩌구’ ‘김일성 어쩌구 저쩌구’ 라는 식으로 한마디라도 말을 한다면 큰일 아닌가?
하지만 다행이 계속 말도 안 되는 영어로만 계속 중얼중얼 할 뿐이었다.
나는 상익씨 덕분에 술도 덜 마시고 상익씨를 부축하고 숙소로 돌아 왔다.
그날 이후부터 술을 우리들에게 술을 많이 권하지 않았고. 우리는 묘향산 선녀가 무섭게 보였다.
그 후 우리는 국제친선 관람관이라는 김일성과 김정일 수석이 해외로부터 받은 선물들을 모아서 전시한 곳과, 용문대굴이라고 하는 엄청나게 큰 동굴 등을 구경하고 다시 평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돌아오자마자 묘향산으로 떠나기 전에 과제로 주었던 동작 4단계 과제를 검수 하기로 하였다. 작업자들 중에 2명 정도의 작업자는 생각보다 좋은 결과를 보여 주었다.
사실 내심 걱정스런 생각이 많이 있었는데. 의외였다.
박부사장님의 말에 의하면 원화 교육을 대학에서 받은 사람들이란다.
역시 기본기가 중요하다는 것이 북한에서도 여실이 증명된 것이라고나 할까?
원화 교육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손으로 그림을 그려서 원동화 작업을 해본 사람들이라는 예기이다.
우리는 이로서 모든 계획을 실행하고 서울로 돌아 왔다.
그 이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는 2번 더 북한에 다녔는데. 결과만 놓고 얘기한다면 상당히 고무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현재 만들어진 딩가 시리즈중 17화부터가 북한에서 작업한 것들인데. 사실 앞에서 작업한 내용과 그리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24화까지 완성된 상황이고 나머지 33화까지는 현재 북한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인데.
크게 문제가 일어난 적이 없다.
물로 정치적 이유 때문에 모든 결과물이 북경을 거쳐서 오기 때문에 중간 검수하는 데만 하더라도 받는데 8일 보내는데 8일 정도 시간이 걸리다 보니 16일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 무척 안타깝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미 2D 는 유럽의 하청 작업을 많이 하고 있는 상황이고, 3D 는 딩가가 처음이기는 하지만 기본 교육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빨리 적응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또한 중국에 경우 납기를 맞추기 위해 밤을 새운다거나 늦게 까지 작업을 한다거나 하는 것이 인식의 부족으로 힘든 상황이지만 2번 더 북한 방문하면서 검수 하는 과정에서 내내 밤새워 작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북한 하고 3D 애니메이션을 공동으로 하는 것에는 넘어야 할 숙제들이 많다.
딩가의 경우는 1분짜리 인데다가 Internet 로만 노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납기를 못 맞춘다거나 해서 방송에 지장이 생긴다거나 그런 일은 없다. 그러나 만약에 북한하고 방송용 3D 애니메이션을 공동으로 제작한다고 한다면 18일이나 걸리는 검수 시간을 감당하기는 무척 힘들 것이다. 또한 북한에 체류 하는 체류 비용에도 상당이 문제가 있다. 호텔비용과 식비 만을 계산하더라도 서울에서 같은 수준으로 체류하는 것 보다 1.5 배정도의 비용이 더 발생하고, 안내원들의 식비까지 같이 지불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제작 비용의 협상인데. 이것은 아직까지 북한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 구조를 잘 이해하지 못함에 의해서 생겨나는 문제라고 생각이 되지만. 3D 애니메이션의 제작 단가를 정하는 북한내의 정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같은 수준의 질을 내더라도 가격이 더 저렴한 것이 보다 경쟁력이 있다는 식의 논리를 아직까지 잘 이해하지 못 하는 것 같다.
또한 애니메이션의 내용상에 사상이나 종교, 또는 이념적인 내용이 있는 소재는 공동제작이나 하청제작을 안 하고 있는 것 또한 우리가 그들을 이해해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그러나 계속적인 접촉과 공동제작이 계속 이루어 진다면 이러한 문제들은 하나씩 해결되리라 생각된다.
애니메이션을 산업이기 이전에 하나의 우리의 문화라는 생각을 한다면 이익을 추구하기 이전에 보전하고 발전하는 것이 우리들의 몫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 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남북 합작 애니메이션 은 같은 문화로 남북이 공동으로 제작하는 것에는 큰 의의 가 있을 것이다. 갑자기 너무 거창하게 얘기한 것 같다. 흐흐흐.
사실 통일에 대해서는 뭐라고 얘기할 것이 없지만 주위에서 하도 통일사업 통일사업이라고 많이 부르다 보니까~ 한마디 해야 할 것 같아서~ 주절 주절 떠들어 보았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국내 애니메이션이 영화 쉬리처럼 좀~ 제발 기어코, 마침내, 결국은, 비로소 쾅! ~ 하고 번쩍번쩍 반짝이는 날이 오는 것이 가장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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