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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GGRAPH ASIA 2010   Community Artworks of Animation
 
남북한 공동 프로젝트 3D 애니메이션 <딩가> 제작기 #3
KoreaGraph 2010-12-12

평양사람들의 억양은 부산 사람들처럼 조금 억세고 강하게 느껴진다. 어쩔 땐 싸우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자꾸 듣다 보면 익숙해진다.
우리 일행을 이미 삼천리 총회분들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한번 평양에 와봤던 하나로 통신의 이상열과장의 리드로 우리는 졸졸 따라 다녔다.
이미 우리를 앞으로 계속 운반할 봉고와 운전기사 아저씨가 대기 중이었다.
처음 보는 삼천리 총회 식구 김선생, 리 선생과 인경련 참사(우리의 안기부) 이선생과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 되었다. 급하게 봉고를 타고 평양시내로 들어가는 도로를 달렸다.
다들 처음 만남이어서 그랬는지 인사를 하고도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선생들 이제 평양에 처음 와서 긴장들 할 텐데 긴장들 풀라우~” 사실 이 말이 우리를 더 긴장시켰다. 하지만 ‘허허허허~’ 긴장된 웃음을 지으며 조금씩 얘기를 꺼내면서 긴장을 풀려고들 노력하였다.
평양은 정말 서울이나 북경하고도 정말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같은 하늘 아래 이렇게 다르게 자라난 북한과 남한이 같은 민족이라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평양은 도시 내에도 아직도 논이나 밭이 보이기도 하고 일단 오염은 없는 듯 공기도 맑고 신선했다. 건물들은 거의가 당의 계획아래 지어졌다는 느낌이 확연하게 보였고, 붉은 색의 굵은 글씨로 “김일성 장군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신다!” 라는 글이 맨 처음 눈앞에 들어왔다. 시민들은 대부분 비슷한 의상 (인민 복) 차림이고 여성들은 아직도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고 다니는 사람이 많은 듯했다 (조총련 또한 같은 의상이다) 신기할 정도로 높은 100층이 넘는 호텔 건물부터 허름하게 시멘트 색이 드러난 아파트 건물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모습들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왔다. 기본적으로 평양은 아주 조용하게 보였다. 자동차도 우리의 10분의 1정도도 안돼 보일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교통 체증이 있을 리 없다. 중국처럼 시민들의 대중교통은 자전거가 많고, 신호등대신 여자 교통순경의 손짓에 맞춰서 운전을 한다. ‘내가 지금 영화 세트에 와 있나?’ 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일단 공항에 도착한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김일성 동상 앞에서 한번 예의를 갖춰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항에서 봤던 많은 사람들을 김일성 동상과 만경대를(김일성의 생가) 방문할 때까지 계속 또 보게 된다. 그뿐이 아니라 북경으로 가는 고려항공 비행기가 토요일밖에 없기 때문에 토요일에 또 대부분 다시 만난다.
만경대에 올라서 평양을 보면 한눈에 평양 시내가 다 보인다. 우리처럼 한강 주의에 아파트가 없어서 그런지 평양에 흐르는 임진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평양이 전부 한눈에 들어 오는데. 정말 시원하게 보이는 도시의 전정은 멋있게 보였다. 어떻게 보면 SFX에서나 볼만한 미래도시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60~70 년대의 계획된 도시 같기도 하다.
사실 평양에서 비행기로 서울 까지는 1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일 텐데 참 멀게 느껴진다.
또 사실 더럽게 멀리 돌아서 왔지 않는가? 사실 멀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멀게 돌아서 와서만은 아닐 것이다. 50년 만에 처음으로 교류를 하는 상황에서 생겨나는 현상일 것이다.
사실 내가 50넘은 노인도 아니니 평양의 50년 전의 모습은 알 리가 없다. 하지만 평양에 50년 전에 사셨던 분이 이곳에 오셨다면 나처럼 멀게가 아닌 가깝게 느꼈을 지도 모른다.
평양을 잠시 쳐다보면서, 마치 내가 여태껏 관심도 없고 느끼지도 못했던 역사의 소용돌이 속의 한 곳에 서 있는 듯한 이상야릇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여지껏 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왔다는 나의 생각을 뒤엎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역사라는 힘에 의해 내가 알지 못했던 감정을 맛보고 마치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마치 어두워서 한치의 앞을 내다볼 수는 없고 무엇이 나를 기다릴지 모르는 동굴 속으로 내가 아닌 커다란 힘에 의해 떠밀려 들어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사실 한편으론 몰라던 형제를 만난 어색함과도 비교될만한 느낌도 많이 받았다. 일단 평양주민들은 말이 통하는데다가, 먹는 음식도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양에 있는 보통강이라는 강 옆에 있는 보통강려관 (보통강호텔)에 투숙하였다. 호텔에 도착한 시각이 5시정도 돼서 삼천리총회에 가서 업무를 보는 것이 조금 늦었기 때문에 간단하게 일정을 정리하고, 저녁에 총회 부사장님과 저녁을 먹고 쉬기로 한 것이다.
지금은 조금씩 상황이 바뀌고 있기는 하지만 그때까지도 저녁만찬이나 평소 식사에 대한 모든 계산은 남측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계산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까 밥값만하더라도 몇 백 만원씩 쓰게 되는 것이 보통이라 한다.
통일교육원에서 교육을 받을 때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하였는데. 몇몇이서 북한 안내원들과 같이 식사를 하게 되면 유난히 이것저것 많이 시키게 되고 남측사람들도 유난히 허세를 부리기 좋아하다 보니 괜히 많이 시켜서 먹지도 못하고 돈만 많이 쓰게 된다 –외국인대상으로 하는 식당의 음식가격은 우리보다 쬐금 싼 정도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날의 만찬 또한 하나로에서 계산했다는 얘길 들었다. 정말이지 북한 사람들은 대부분 술을 아주 잘 마시는 것 같다. 항상 술을 마실 때보면 맥주와 양주를 같이 섞어서 마신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폭탄주인 것이다. 맥주는 음료수로 마시고 소주나 곡주 또는 과일주 같은 것을 같이 마시는 것이 보통 이였다. 술을 잘 못 마시는 나로서는 조금 곤혹스러웠다. 예전의 우리 아버지 세대들처럼 술을 조금 억지로 같이 마시게 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었다.
예전의 우리 아버지 세대들은 그렇지 않는가? 맥주하고 소주하고 박스로 사다 먹고, 맥주 소주 닥치는 대로 섞어먹고, 물론 아직도 그런 사람들이 가끔 있기는 하지만, 북한 남성 또한 흡연율이 상당히 높아 보였다, 대부분의 장소에서 흡연이 가능해 보였고, 또 많이 흡연하는 것 같았다. 다행이 공기가 좋아서 금새 공기는 상쾌해지니까, 흡연을 안 하는 나로서는 참을 만 했다. 만찬 뒤에 우리는 안내원들과 뒤풀이로 가볍게 맥주를 한잔씩 마셨다.
사실 놀라운 일은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삼천리총회의 김선생이라는 분의 첫마디가 기가 막혔다. “그~ 시네픽스 조신희 사장의 규빅스는 요즘 어드럽습네까?”, “예?”
너무나도 뜻밖의 질문이었다. 시네픽스라는 회사가 서울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도 신기한데. 조신희 사장님의 이름과 규빅스가 미국에 투자를 이끌어 낸 사실과 미국에서 방영될 계획이라는 사실까지 모두 자세히 알고 있었다. 사실 이것을 질문이라기 보다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려고 하거나, 김선생이 서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 뒤로 얘기하는 하나로 통신의 기술과 인터넷의 사업방향 및 서울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콘텐츠사업과 통신 산업에 대해서 혀를 내두를 정도로 자세히 알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기 선생이 얘기할 때마다 대답을 하기가 힘들 정도로 혀를 내두르며 진땀을 빼기도 했다.
“김선생님은 남측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어떻게 그렇게 상세히 알고 계십니까?”
“내레, 모두 신문에서 봤디 오 고럼! 신문에서 봤지!” 사실 저녁 만찬 때 삼천리 부사장님의 말에 의하면 내가 신문기사에 났던 것들을 봤다는 말을 들었다. 익히 얼굴을 알고 있었다는 말도 들었다. 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어느 정도는 북한에 우리가 하는 사업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에 이미 관심대상이 이미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일단 북경을 거쳐 평양에 온 이후 줄 곳 긴장을 한 탓 인지 피곤함이 몰려 왔다. 일단 방으로 돌아와 취침 준비를 했다. 호텔이라고 하지만 사실 좋은 여관 정도의 시설과 뜨거운 물이 아침과 저녁에 정해진 시간만 가능하다는 안내 글이 눈길을 끌었다. 아무래도 평야의 전력 상황이 안 좋다는 사실이 사실인가보다 생각했다. 밤 풍경을 보기 위해 창 밖을 보았을 때 이런 사실은 더 피부에 와 닿았다. 그것은 정말 평양 시내의 전경은 정말 아주 어두운 밤이었기 때문이 중요한 곳만 빼고는 모두 소등한 상황같이 보였다. 간간히 보이는 자동차와 자전거의 전등 들이 잘 보일 뿐 불을 켜고 있는 건물은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TV를 켰다. 북한 방송 2채널과 호텔을 감안해서인지 일본HNK와 중국 CCTV를 볼 수 있었다. 물론 가까운 서울에서 방송하는 채널은 볼 수 없었다.
간혹 HNK 에서 한국 뉴스를 일본어로 번역해서 보여주는 것을 간혹 볼 수 있었다.
사실 서울에선 유선전화, 핸드폰, 인터넷, TV 등등을 통해서 정보를 주고 받고 하지만 일단 평양으로 온 이상 나는 완전히 고립된 것이나 다른 없는 것이었다. 전화나 팩스는 북경에 보낼 수 있다고는 하지만 호텔에서 보내본 일이 없다는 하나로 통신 이상열 과장의 말을 들으면 암튼 서울과는 연락을 취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하루는 보낸 우리는 내일 아침 일찍 삼천리 총회를 방문하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하루를 보통강호텔에서 보내고 다음날 어제 탔던 봉고를 타고 삼천리 총회를 방문하였다. 삼천리 총회건물은 외관으로 봐선 서울처럼 회사인지 아니면 공공기관인지 좀 구분하긴 힘들어 보이긴 하지만 내부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삼천리 총회사에선 기술회사의 박부사장님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바로 이분이 여기선 가장 오랫동안 CG 작업을 해오신 분이라는 설명이었다.
나는 인사를 하고 우리가 가져온 자료들과 서점에서 사온 MAX , Lightwave, Maya 등의 매뉴얼을 보여 드렸다. “이 선생이 이번에도 수고를 하셨구만”
MAX 매뉴얼을 보면서 저자를 보고 하는 얘기다. 이미 전 버전의 책을 봤다는 얘기다.
인상적인 것은 북에서도 Light wave를 광파라고 부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박부사장 여태까지 해 온 것들 좀 우리 남측에서 온 선생들에게 보여드리라우~”
“크~ 뭐 그러디오~”
삼천리 기술회사의 부사장님이신 박부사장님의 안내로 삼천리 기술회사에서 작업한 CG 작업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8.15 광복 이후 본국으로 돌아오던 한국교민들을 태운 일본함선을 침몰시킨 (우끼시마)사건을 영화 한 장면에서 바다와 함선 그리고 침몰직전의 폭파효과 등을 모두 CG 작업으로 만들 것과 그밖에 작업한 몇몇 가지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바다와 폭파하는 effect 들을 모두 자체적으로 Programming 해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바다라는 표상이 그리 간단치가 않아서 애를 많이 먹이더구만”
“파도를 표현하는 알고리즘을 하나라도 빼먹으면 바다 같잖게 보이는데 환장하게 만든단 말이요”
“그래서 우리 연구사들이 며칠 날밤 패면서 만든거디요”
정말로 바다와 배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단지 북한에서 녹음한 뽕짝 같기도 하고 가곡 같기도 한 배경음악이 익숙해져 있지 않은 나에겐 배경음악이 상당히 어색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북한에서도 이런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이 상당히 고무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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